이회창 "정치란 무엇인가"

보령인터넷뉴스. 출처/지상욱 자유선진당 전 대변인트위터 | 기사입력 2011/06/0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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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정치란 무엇인가"
 
보령인터넷뉴스. 출처/지상욱 자유선진당 전 대변인트위터   기사입력  2011/06/04 [13:57]
이회창(자유선진당)

                         정치란 무엇인가

- 정의 와 개혁 - 이 회 창

1. 머리말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나는 정치가 추구하는 것은 정의와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정치와 정의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30년 넘게 법관으로 일했다. 나는 법관을 나의 천직으로 알았다.

어느 누구의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생각한대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업무량 때문에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사건보따리를 싸들고 집에 가고 여름휴가도 제대로 못 갈만큼 힘든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삶의 보람이고 희열이었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사건, 가난으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사건에서도 피고인이나 소송당사자의 절실하게 정의를 찾는 목소리가 있고 이 정의를 찾아주는 것은 바로 神의 일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후 법관직을 떠나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정치에 입문할 생각이 없었다.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하면서 지켜본 국회나 정치의 모습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또한 나는 국무총리로 있으면서 김영삼대통령에게 총리와의 역할분담을 요구했다가 불화로 총리 직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정치에 들어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인생은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곡절을 거쳐 결국 정치에 들어왔으나 당시 결단을 하게된 동기는 법관은 자신의 책상에 올라온 사건에 한해서만 정의를 실현 할 수 있을 뿐이지만 정치는 보다 폭넓게 국가나 사회치원에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정치의 현실은 아직도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우선 국회의 모습만 보아도 그렇다.
엊그제도 어느 분이 국회에 오기위해 택시를 탔는데 그 택시기사가 사회에서 똑똑한 양반들이 국회에만 들어가면 다 바보가 돼서 서로 싸우니 그까짓 국회 없애 버리면 좋겠다는 말을 하더라고 나에게 전해주었다.

국회의원이 전기톱, 망치를 들고 국회의사당 방문을 때려부스질 않나, 정당이 폭력배 같은 젊은이들을 동원해서 본회의장 앞에 둘러 세워 국회의원의 본회의장 출입을 막지 않나, 민주주의 국가의 국회라고는 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우리 국회이다.

대결적 이념과 시각을 가진 2대 정당의 양당체제가 가져온 폐단이고 허점이다.

이래서 정치에서 정의를 말하는 것은 자칫 헛소리처럼 들릴지 모르나 그래도 정치가 바로서야 한다.

국가운영의 틀과 과정을 좌우하는 것이 정치인만큼 정치는 매우 중요하고 정의로운 정치, 좋은 정치는 우리가 부단하게 추구해야할 가치이다.


2. 정의란 무엇인가?

사실 정의론은 법철학에서 다루는 어려운 주제이다.
정의가 무엇인가를 놓고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서 칸트, 벤탐, 펠르만, 존 롤스, 한국에 잘 알려진 마이클 센델 등 많은 쟁쟁한 사상가, 학자들이 백가쟁명식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의는 고고한 상아탑 안에서만 다루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실생활에서 직접 겪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부딛친 문제에 대해 여러분이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정의이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불의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일단 정의를 공정(公正)의 정의와 공동선(共同善)의 정의로 나눠 볼 수 있다.

최근에 화제가 된 사건과 문제들을 통해 무엇이 정의인지 생각해보자

첫째로, 부산저축은행 사건이다.

부도위기에 처한 그 은행의 임직원들이 영업정치가 있기 전 이틀 동안에 자신들과 친인척 심지어 VIP 고객의 예금까지 사전에 인출한 사건이다.
다른 예금자들이 손해를 보든 말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긴 것이다.
대전, 전주등 저축은행의 유사사례까지 합해 무려 1,077억의 예금이 사전인출 되었다.

이밖에도 회계장부를 조작하고 영세한 예금자가 맡긴 주머니 돈으로 금융당국자와 감사원 감사위원 등 권력자에게 뇌물을 주어 매수하는 등 비리가 속속 들어나고 있다.

예금자를 위해 공정하게 업무처리를 해야 할 임직원들과 권력기관의 이러한 비리행위는 추상과 같은 징벌을 받아야할 불공정한 범법행위로 정의에 반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둘째로, 요즘 심각해진 사회양극화 문제이다.

특히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자영업자의 양극화문제와 일부재벌의 행태가 국민감정을 극도로 악화시키고 있다.

이명박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정책을 추진한다지만 지금 대기업은 사상최고의 실적과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반면에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점점 위축되어 도산으로까지 내몰리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예컨대 삼성회장은 올해 1,346억원의 배당을 받았고 상장회사 중 100억이상 배당을 받은 총수만 13명이라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한편 대기업이 원자재가 인상을 협력업체의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않거나, 경기불황으로 인한 손실을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보충하거나, 협력업체의 기술인력을 빼가는 식의 대기업의 횡포 사례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대기업들이 MRO의 사업확장을 수단으로 중소기업의 업종인 문구, 유통, 기계공구등 분야까지 싹쓸이 하다시피 잠식해가고 있다.

거기에다가 언론보도대로 총수일가가 제빵사업이나 커피점, 음식점 사업까지 손을 뻗치고 있어 영세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점점 살아남기 힘들게 되고 있다.

대기업들은 계약대로 하고 있고 경쟁의 룰을 어긴 일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가 이렇게 양분화 되고 강자는 더욱 강해지는 반면에 약자는 더욱 약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인간은 달라이라마가 말했듯이 상호의존적 존재이다.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상호관계를 가지면서 존재한다.
그래서 공동체를 유지하기위한 연대성과 좋은 사회체제를 만들기 위한 도덕적 가치는 반듯이 필요하다.

좋은 공동체를 위한 도덕적 가치란 시민으로서의 책임의식과 희생, 봉사 나눔과 같은 자발적인 공동체 주의적 가치를 말한다.

사회양극화가 심화되면 사회공동체의 연대성이 깨지고 도덕적 가치도 훼손되어 극한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사회가 분화되면 참으로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여기에서 사회공동체의 연대성과 도덕적 가치는 공동체 존립을 위한 공동선(共同善)으로 이를 지키는 것이 정의라고 보아야 한다.

사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므로 재벌이나 대기업의 부 축적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자유주의 하에서 어느 경우에나 기업의 이윤추구와 부 축적은 선(善)이고 이것을 비판하는 것은 좌파적 시각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으나 이것은 낡은 근대의 자유지상주의적 사고이다.

사회가 분리, 갈등으로 분화되면 기업의 경제활동인들 온전히 할 수 있겠는가?

사회공동체의 연대성과 도덕적 가치라는 공동선은 현대의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정의이므로 이에 반하는 이윤추구는 더 이상 선이 아니고 불의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재벌이나 대기업은 돈만 벌면 그만 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사회양극화문제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것이 단지 약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서비스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회공동체 안에서의 존립을 위해 필요한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선 일자리문제가 심각하다.

역대정부가 일자리문제를 국정의 우선과제로 삼지 않는 일이 없고 대권후보자들마다 현란한 일자리 약속을 하지만 제대로 되지못했다.

우선 재벌과 대기업이 일자리문제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지금 1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즉 현금수입을 투자에 쓰지 않고 챙겨두고 있는 돈은 해마다 늘어서 올해는 전년대비 96%, 약 두 배가량 증가 했다.
15대 기업의 2010말 현재 사내 유보금은 57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30조원만 일자리 창출을 위해 투자하더라도 생산유발효과는 62조2,200억원에 이르고 5만3천명의 일자리가 생기는 고용효과를 낼 수 있다.

외국의 대기업총수들, 빌게이츠나 워렌버핏과 같은 이들은 자신들의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 하거나 가족에 대한 상속을 포기하는 등 행동으로 사회의 공동선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의 재벌과 대기업들도 작심하고 사회의 공동선 증진에 동참해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

재벌기업의 총수들이 예컨대 사재의 절반가량을 뚝 짤라내어서 청년들 일자리 창출에 내놓거나, FTA로 손실을 입게 되는 농업과 축산업 쪽에 손실보완재원으로 내놓는다면 국민의 재벌기업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3. 정치는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

나는 보수주의자이다. 정의실현을 위한 보수주의의 입장을 국내정치와 남북관계로 나누어 말하겠다.

(1) 국내정치

보수주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헌법이 명시한 자유주의의 가치를 존중한다.

헌법은 우리나라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와 평등의 균형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의 시각이 대립된다.

일단 소박하게 정의한다면 자유를 중시하는 쪽이 우파 또는 보수, 평등을 중시하는 쪽이 좌파 또는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에서는 성장을 중시하는 쪽이 우파, 분배를 중시하는 쪽이 좌파가 될 것이다.

나는 개인의 존엄과 가치는 어떤 권력이나 법률로도 침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헌법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보수주의는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핵심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고 개인의 능력과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성취 욕구를 충족하게 함으로써 국가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게 한다.

여기에서 공정한 기회 부여와 경쟁의 룰이 필요하며 보수주의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공정의 정의를 추구한다.

한편 경쟁에서 생기는 낙오자와 약자, 소외된 자의 존엄과 자유도 승자나 강자 못지않게 존중 돼야한다.
이 일은 개인의 자유와 가치의 존중을 본령으로 하는 보수주의의 당연한 몫이다.

그들에게 재기와 회복의 기회를 줄때에 우리는 이러한 낙오자와 약자 중에서 승자를 제치는 성공사례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또한 빈부격차 등 사회양극화의 심화로 사회의 연대성과 도덕적 가치라는 공동선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사회양극화 해소에 노력하는 일도 공동선이라는 정의를 지키는 보수주의자가 해야 할 일이다.

여기에서 보수주의는 공동선의 정의를 추구하는 따뜻한 보수주의의 면모를 갖는다.

결론적으로 보수주의는 공정한 보수와 따뜻한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며 나는 자유선진당을 창당하면서 정강정책에 이러한 이념을 명시하였다.

(2) 남북관계

남북관계에서도 보수주의가 추구하는 정의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다.
북한체제가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체제로 변화하고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공존의 시대가 열리기를 추구한다.

한반도에 실존하는 세력인 북한에 대해 대결과 봉쇄로 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평화공존으로 통일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특유한 2중구도 즉 평화구도와 대결구도라는 모순구도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평화구도에서는 북한은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상대방이지만 대결구도에서는 휴전선에 상호 170만이 넘는 군대와 대량살상무기 등으로 대치하고 있는 적(敵)이다.

대결구도에 치중하여 평화구도를 망쳐서도 안되지만 평화구도의 환상에 빠져 대결구도에서 허점을 보이면 우리의 존립이 위태로워 질수 있다.

평화구도에서 우리는 북한체제를 개방되고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체제로 개혁하게끔 유도해야한다.

그래서 대북정책의 기조는 북한에 대해 대화와 경제협력을 통해 지원하되 그 지원은 반듯이 체제변화와 연계시키는 상호주의의 원칙을 지켜야한다.

대결구도에서의 변화는 현재 거듭되고 있는 북한의 무력도발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서는 무력도발에 대한 강력한 대응과 응징으로 무력도발이 오히려 손해 일뿐이라고 깨닫게 만드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이명박대통령은 평화구도에서나 대결구도에서 모두 적절하고 단호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우선 북한체제의 변화에 관해 이대통령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깔아놓은 햇볕정책의 궤적에서 과감히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말로는 천안함, 연평도 사과가 선행조건이라고 하면서도 남북정상회담에 미련을 갖는 모습이 그렇다.

또 무력도발에 대해서도 말로만 강력대응과 응징을 외칠뿐 실제로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북이 무력도발로 노리는 효과는 남한에 전쟁 공포심이 확산되어 북한의 요구를 다들어 주자는 식의 여론분열이 일어나는 일이다.

천안함사건 후 치러진 6.2지방선거에서 북은 톡특히 재미를 보았다.
민주당을 비롯한 좌파세력들은 북한에 대한 강한 응징은 전면전쟁을 불러 온다는 전쟁공포심을 확산시켜 표를 얻었다.

이대통령은 강력한 대응을 다짐하고도 무력대응을 제대로 못했을뿐 아니라 전쟁공포심 확산에도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전면전쟁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것, 3대 세습으로 체제유지에 혈안이 된 김정일이 자신과 체제를 파멸로 몰아넣는 전면전쟁은 결코 일으킬 수 없다는 것, 전쟁위협은 헛방이고 블러핑이라는 것을 이대통령은 몇 번이라도 국민에게 직접 설득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것은 하지도 않고 해상훈련이나 하고 있다가 또 연평도에서 당했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주로 민주당과 좌파세력들이 주동이 되어 과거의 햇볕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 천안함, 연평도 사과문제를 건너뛰어 남북대화와 경협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심지어 여당내 일부 의원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햇볕정책은 한마디로 북한에 대한 지원, 협력을 계속하면 그 체제는 변하게 되니 상호주의로 변화와 연계시키지 말고 무조건 지원, 협력을 해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1997년 김대중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노무현정권에 이어져 10년간 일관되게 추진해온 햇볕정책이 과연 성공했는가?

10년 동안 총 8조4천억원과 이밖에 현금 5억달러 등이 지원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북한체제는 변화하기는커녕 2차 핵실험과 핵보유국 선언을 하고 강성대국을 목표로 치닫는 한편 3대 세습체제로 수령독재체제를 공고히 굳혀가고 있다.

햇볕정책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14년 전에 시작되어 그 후 실패가 실증된 대북전략으로 다시 회귀를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수구적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패가 실증된 대북정책의 궤적을 뜯어 고쳐서, 즉 상호주의 원칙을 지키면서 북한을 자유와 개방화체계를 유도해야 한다.

46명의 수병을 비롯한 병사와 민간인의 고귀한 생명을 희생시킨 천안함과 연평도사건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의 요구는 최소한의 요구이고 남북대화 등 정상화에 대한 상호주의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조건조차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남북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만들 수 있겠는가?

우리가 양보해야만 남북관계가 풀린다는 고정관념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아주 잘못된 편견이다.

북한이 양보해야할 것은 양보할줄 알아야 정상적이고 진정한 남북관계가 새로 형성될 수 있다.


(3) 지나친 포퓰리즘 경쟁

득표경쟁을 해야하는 민주주의 정치에서 포퓰리즘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책이나 공약을 지나치게 과대 포장한 포률리즘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으로서 정의에 반한다.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모두 지나친 포퓰리즘 경쟁에 함몰 되어 있다.

민주당이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및 반값등록금을 들고 나오자 이에 질세라 한나라당도 무상급식의 확대, 무상보육 외에 반값등록금을 들고 나왔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사회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복지확대는 불가피한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확보 등 재정여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복지확대는 재정악화와 국가부채 증가로 이어져 복지의 지속이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자자손손 후세에게 빚더미의 멍애를 지워줄 뿐이다.

지금 양당이 내놓은 무상복지정책은 재원에 대해 일단 이리저리 꿰어 맞추어 있지만 보다 구체적인 재원확보 방안은 뒤에 제시하겠다고 미루고 있고 실제로 그만한 재원확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중에 어찌되던 일단 표나 얻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표퓰리즘 경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적 가치보다 평등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좌파적 의식을 가진 민주당의 복지포퓰리즘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수주의 정당이라는 한나라당의 행태는 참으로 가관이다.

이제는 한나라당은 좌클릭해야 한다고 하면서 재원확보도 불분명하고 당내에서 조차 정책협의가 안된 무상복지, 반값등록금 등 정책을 황급하게 쏟아내는 것을 보면 측은한 생각까지 든다.

재원확보가 가능하고 재정구조와 국가부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탁상공론으로 꿰맞출 생각 말고 진정으로 돈을 감당할 수 있고 서민과 대학생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얻고 반문해 보라.

집권당이 바람 앞에 휘날리는 갈대처럼 행동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지금 한나라당내에는 남북관계도 좌클릭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천안함사건에 대한 강경대응 조치로 6.2지방선거에서 실패했으니 이제는 북한의 사과를 고집하지 말고 남북대화와 경협재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6.2지방선거에서 전쟁공포심의 확산을 막지 못한 것은 북한이 전면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점을 국민이게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강경대응조치 때문에 선거에 실패했다고 반성한다면 앞으로 어떤 무력도발에도 강경대응을 하지 말자는 말인가

참으로 쓸개 빠진 비겁한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집권당이 이렇게 비겁하게 헤매고 있으니 장차 남북관계가 어떻게 뒤틀릴지 암울한 생각이 든다.

4. 맺는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미국의 하버드로스쿨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론이 한국에서 100만부가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정의란 법철학적 주제이고 아무리 쉽게 풀어써도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수월하지 않은 주제인데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 특히 젋은이들이 많이 구독했다는 것은 나에게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연평도 포격사건 후 나는 우리당의 지도부와 함께 강화도에 있는 해병대 사단 사령부를 방문한 일이 있다.
그곳은 북한군의 전방GP와 불가 1.5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최전방 진지이다.

이곳 내부반에서 병사들과 환담하든 중 제대를 앞둔 병장 한사람이 본인이 읽고 있는 책을 내놓고 싸인을 요청했는데 그 책이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론 영문판 이었다.
자주 읽었는지 책이 낡은 상태였다.

나는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감동을 누를 수 없었다.
최전방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는 병사가 정의론을 탐독하다니...
우리기성세대들이 모르고 있는 사이에 우리의 젊은이들은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의가 무엇인가, 왜 정의가 필요한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젊은 세대는 바로 우리 미래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이 나라가 정말로 바른 사회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로 변화할 수 있는 희망인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다.
여러분 자신이 정의롭게 생각하고 정의롭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누구의 눈치를 보고 무리를 지어야만 정의를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정의롭게 생각하는 젋은이는 다른 사람과 확연히 구분되고 눈에 띈다.
群鷄一鶴, 닭의 무리에 선 학이랄까, 이것이 바로 내공의 힘이다.

무엇이 정의이고 바른 정치인가도 여러분 스스로 정의감으로 판단하라.
인터넷이나 트위터에서 다중이 몰려간다고 휩싸여 가지마라

다수가 반듯이 정의는 아니다. 다수는 자칫 정의의 눈을 가릴 수 있다.

개인각자가 정의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젋은이들이 많아질수록 한국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삭풍이 휘몰아치는 광야에서도, 군중의 시끄러운 외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서있는 정의로운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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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6/04 [13:57]   ⓒ br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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