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권 평론] 이상옥의 작품세계..작가의 개인전에 부쳐

허진권(파인아티스트, 목원대학교 기독교 미술과 교수) | 기사입력 2013/08/3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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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 평론] 이상옥의 작품세계..작가의 개인전에 부쳐
 
허진권(파인아티스트, 목원대학교 기독교 미술과 교수)   기사입력  2013/08/31 [14:26]
-자유인 이상옥, 그 삶의 일기장-
 
작가 이상옥의 최근 작품들을 보면 유화나 아크릴, 파스텔이나 크레파스 등 색상과 채도가 있는 재료를 사용한 작품은 거의 없다. 캔버스에 펜으로 제작한 것 몇 점을 제하고는 한결같이 8절 스케치북에 펜으로 그린 풍경화들이다. 

화면에 등장한 모티브도 하나같이 자신의 생활 주변에 있는 것들이다. 달팽이, 나비, 잠자리, 나뭇잎, 토끼 한 마리, 참새 떼, 감을 따는 농부, 고양이, 숲속의 기와집, 달리는 자동차, 등산객, 산, 고목 등등. 이처럼 청라 평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대상들이다. 

그러나 그가 획을 긋고 또 긋고 수 만 번 되풀이하여 밀도를 올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처럼 치열한 집념과 집중력으로 만들어낸 화면을 대하노라면 비로소 그의 내면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평범한 대상, 흔하디흔한 스케치북과 펜, 어렸을 적 누구나 해봤던 긋고 또 긋는 행위가 그를 통하면 아주 특별한 것이 된다. 마치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되는 것처럼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모든 가치 척도가 금융인 사회,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지난 컨템포러리 시대, 게다가 수많은 작가들이 열병처럼 흉내 내고 있는 이시대의 각종 미술 사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옥은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예 관심조차 없다. 젊은 시절 아방가르드적 사고로 무수한 실험을 즐겨하던 청년작가가 지금은 왜 시골에서 이런 생활을 하며 이런 작업을 하고 있을까? 그가 궁극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들은 그가 던진 한마디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선생님, 저도 한때 대도시에서 취직하고 잘 있었어요. 한데 답답해서 못 견디겠어요 . 해서 내려왔죠.” 그렇다. 답답해서다. 그는 이 시대의 다원적인 구조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추구했던 것이다. 인간적인 정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그의 주변은 모든 것이 비즈니스였다. 정해진 시간과 업무, 감정과 관계없이 지켜야하는 포커페이스 같은 디지털 세계에서 아날로그적인 그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상과 동떨어진 구조에서 자신의 마음조차 찾아서는 안 될 현대 사회에서 인간미를 찾고자했던 그의 생각은 시대착오였을 것이다. 하여 그는 자유를 찾아 고향인 청라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농사짓고, 작업하고, 벗들과 전화하며 투덜대고, 그렇게 하루하루 숨 쉬며 살아가는 그 시공을 고집스럽게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 이상옥은 자유, 평화, 인정, 슬픔, 고통, 추억, 잡담, 의미 없는 한마디, 이렇게 인간 냄새 풍기며 살고 싶은 자신을 기록하고 있다. 자연의 본질, 사물의 본질, 인간의 본질, 이상옥 자신의 본질을 찾으려고 억지스럽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 그대로, 자연스럽게 하루하루를 숨 쉬며 획을 긋고 또 긋고 하기를 수백 만 번, 이제 그의 화면에는 그가 추구하는 자유 그 자체가 眞體가 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그 眞體를 가지고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9월 1일 이상옥작가의 모산미술관 개인전에 앞서 2013년 8월, 허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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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8/31 [14:26]   ⓒ br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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