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보령의 향기, 보령의 빛깔

박종철기자 | 기사입력 2014/10/17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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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보령의 향기, 보령의 빛깔
 
박종철기자   기사입력  2014/10/17 [07:32]

 

난 요즘 성주면 심원계곡에 산다. 동대동 해날마을 아파트에서 줄 곧 살다가 아파트를 처분해 지난 달 30일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줏대가 없어 남 줄 게 많다보니 아내 가게와 살던 집을 팔아 일부 해결하기로 하고 시내 모처에 집을 짓는 터라 지인의 펜션에서 약 3개월간 머무를 예정이다. 덕분에 조용한 곳에서 이런저런 생각도 하게 되고 술도 조금 줄였으니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새벽 심원계곡을 따라 걷는 운동을 하다보면 산 아래를 끼고 흐르는 맑은 물빛이 흡사 숲 속의 나뭇잎 빛깔과 닮았다. 저녁 무렵에는 빨려 들어갈 듯 투명한 물 빛깔이 어느 물감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곱고 곱다. 낯엔 아마도 하늘빛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물에도 이처럼 빛깔이 있다. 농부의 땀과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고추밭에는 농부의 거친 숨소리와 고추의 붉은 빛깔이 있고, 노동으로 얼룩진 공사현장에는 무딘 손끝으로 일궈낸 노동의 결실과 고된 삶의 빛깔이 있다.

옥마봉 등산로 갈참나무들의 속삭임은 거기에 있고, 백운사길 짧게 늘어진 선홍빛 감나무들의 감 익는 소리는 그곳에 있다. 자연도 사람도 저마다 고유의 향기와 색깔이 있으며, 천년고도 경주시가 가지고 있는 지역정서와 보령시민과 보령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정서가 따로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절기마다 느낌이 다르고 빛깔이 다른 건 자연의 이치다. 겨울 찬바람은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고 봄바람은 영하의 얼음을 녹인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이 사회는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고 반목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겨울바람과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봄바람과 같은 사람이 있다. 크고 작은 집단이나 사회구성 속에서 각종 계층의 사람들에게 봄바람과 같은 훈풍과 희망을 불어넣어 비록 가진 것은 풍족치 않더라도 웃음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충동꺼리를 만들어 내 계층 간 조직을 분열시키는 등 사회분위기를 꽁꽁 얼어붙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 같은 사람들은 지식보다 고집이 강해 순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게 보통이며 자기 최면의 테두리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알곡을 영글게 하는 가을 햇살처럼 차분한 지도자는 작설차와 같은 진한 향기를 가지고 있으며 불의보다 정의를 목표로 생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령에는 진한 삶의 향기를 지닌 지도자가 없다. 줏대 없는 일부 시민 또한 오늘 무슨 향기와 무슨 빛깔로 살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아니, 아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 끼 고기반찬에 한 잔 술이면 걱정할 게 없으니 보령의 빛깔이 무엇으로 바뀌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소설가 故 이문구(李文求) 선생은 생전에 그 누구보다 보령의 산하(山河)를 사랑했고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대표작인 연작소설 ‘관촌수필’과 ‘우리동네’에도 보령의 진한 향기와 빛깔이 배어 있다. 선생께서는 “행복의 조건은 재물이 아니라 건전한 정신과 건전한 문화가 중심이 돼야 한다.”면서, “돈이나 가식으로 포장된 행복은 결코 오래갈 수 없으며,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보령시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화상경마장’이 보령의 향기와 보령의 빛깔에 부합하는지 다시 한 번 짚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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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0/17 [07:32]   ⓒ br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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