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늘, 우리의 자화상

박종철기자 | 기사입력 2016/01/0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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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오늘, 우리의 자화상
 
박종철기자   기사입력  2016/01/08 [06:03]
손등은 흡사 굴참나무 껍질을 닮았다. 어찌 보면 낡을 대로 낡아 거칠 대로 거칠어진 콘크리트 벽과 닮았다. 허리는 휠대로 휘어 저 높은 곳을 향한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없다. 끝이 무디어진 호미자락과 쇠스랑 하나에 실었던 희망은 세월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고, 노동에 찌든 육신만 남았다. 막내 자식 등록금에 생활비에 철없이 써대는 용돈 마련에 앞이 캄캄한데 기댈 것이라곤 전답 대여섯 마지기에 취나물 하우스 한 동 뿐이니 그야말로 가진 것 없는 인생살이가 서럽고 서럽기 짝이 없다.
 
어째 팔자가 이 모양 이 꼴인지 누구라도 붙잡고 한바탕 울고 싶고 하소연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럴만한 사람마저 없다. 남들은 큰자식 대학교수 됐으니 이제 편히 좀 살아보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며느리 도끼눈에 눈치나 살피는 자식 놈이 부모의 고생을 알 길이 없다. 더 뜯어 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대학교수면 뭣하고 의사면 뭣하고 판·검사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양 명절에 용돈 몇 푼으로 온갖 허세를 다 부리고 보따리 보따리에 있는 것 없는 것 싸가지고 떠나면 그 뿐인 것을, 그래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오늘도 자식 걱정에 겨울밤이 짧기만 하다.
 
고기 좀 타지 않게 구워봐라, 마늘이 왜 이렇게 매우냐?, 이거 중국산 아니냐?, 술 좀 더 시원한 걸로 가져와라... 주방으로 손님상으로 동동거리며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시간에 마실 줄 모르는 술까지 마시라고 추근거리며 볶아대는 밉상 손님 수발에, 쓸데없이 남편은 있느냐, 있으면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는 등의 갑질에, 정말 화가 목젖까지 치밀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 위생 물수건에 코를 풀어대는 손님에서부터 물수건으로 발가락을 닦는 몰지각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손님을 치르다보면 어느 덧 영업 마감시간이다. 이렇게 고기 집에서 하루 일하고 받는 돈은 고작 3-4만원 안팎이다.
 
올해 최저 임금은 시급 6,030원이다.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 소속 최저임금위원회가 의결한 결과다. 이 같이 결정하기 전 500만 청년·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리는 6월 한 달 내내 아고라, SNS, 각종 커뮤니티 등에 최저 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당시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리는 날에는 회의 내용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같은 관심은 국민들의 삶이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반증이었으며, 박근혜 정권에 대한 기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상액은 단돈 450원에 그쳤다.
 
따라서 올 한해도 노동자 농민의 삶은 달라질 것이 없고 서민들의 생활도 전혀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게 보편적인 시각이다. 침몰직전의 썩은 정치, 썩은 정책, 썩은 재벌, 썩은 금수저들의 향연이 막을 내리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변할 게 없고, 이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한 아스팔트 농사와 아스팔트 노동, 아스팔트 위에서의 저항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은 물대포로 맞설 수밖에 없다. 시급 몇 천원에 자신의 인격과 자신의 자존심까지 팔아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더불어 사는 사회를 기대할 수 없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사회 대 통합도 기대할 게 없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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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1/08 [06:03]   ⓒ br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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